아주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은 생활공동체인 마을을 형성하며 살아왔다. 소중한 삶의 터전을 일구어온 마을에는 수많은 이야기와 문화, 역사가 남아 있다. 그중에서도 ‘외내’라고도 불리는 군자마을은 지금으로부터 600여년 전 광산 김씨 김효로가 정착하면서 그 후손들로 형성된 마을이다. 광산 김씨는 전라남도 광산을 근거로 하는 거족으로 영남에 안동권씨가 있다면, 기호에 광산 김씨가 있다고 할 만큼 그 세가 대단했던 가문이다. 이는 조선시대 문과급제자 수로도 확인해 볼 수 있을 만큼 쟁쟁한 이름을 떨친 가문이다. 오천리가 군자리라 불리게 된 것은 일찍이 이 마을에 들른 한강 정구선생이 입향조 김효로의 친손들과 외손들인 일곱 형제들을 가리켜 ‘오천 7군자’라 불린 데서 그 연유를 찾을 수 있다. 이들 모두는 퇴계의 제자로 ‘한 마을에 군자 아닌 사람이 없다’고 감탄한 데서 유래했다고 전한다. 또한 과거 예안면 오천리에 있던 광산 김씨들의 고택을 이전해 놓은 마을로 조선 초기부터 오천리에 터를 잡고 살았는데, 1974년 안동댐 건설로 마을이 물에 잠기게 되자 주요 고택들을 지금의 군자마을로 이전해 놓았다고 한다. 7군자 가운데 대표적 인물로는 김부필을 꼽을 수 있다. 호는 후조당으로 퇴계 이황 선생이 극진이 아꼈던 수제자로 군자마을 정면에 자리한 고택이 후조당 종택(중요민족자료 제227호)이다. 퇴계 선생은 자신이 아끼는 제자를 위해 손수 현판을 써 주었는데, 별당 대청에는 퇴계의 친필 현판이 당시 모습 그대로 아직까지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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