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한용운심우장] 독립운동가 만해 한용운의 집은 왜 북향으로 지었을까?
서울 성북구에는 산동네의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북정마을이 있다.
옛 문화의 기풍을 느낄 수 있는 성북동 한양성곽 산기슭 아래 자리한 복정마을의 가파른 골목길을 올라가면 만해 한용운이 노년에 머물렀던 심우장이 나온다.
만해 한용운의 독립정신을 엿볼 수 있는 곳으로 사적 제550호로 지정되어 있는 심우장은 일제강점기인 1933년 만해가 지은 것으로 특이하게도 북향집이다.
독립운동가였던 한용운이 남향으로 터를 잡으면 조선총독부와 마주보게 되어 이를 거부하고 반대편 산비탈 북향 터를 선택했다고 한다.
심우장이 있는 북정마을은 버스가 다니는 큰 길 옆 데크 나무로 만든 계단을 올라 골목길을 따라 가면 달동네가 모습을 드러낸다.
한용운이 걸었을 성북동 골목길 구석구석에는 아직도 옛 정취가 그대로 살아있어 정겨운 골목길의 풍경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골목으로 꺾어지면 심우장 가는 길 표지판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어 표지판을 따라 미로여행을 하듯 걷는 재미가 있다.
심우장은 조국의 독립에 평생을 바친 독립운동가로 승려이자 시인이었던 만해 한용운이 임종할 때까지 살았던 집이다.
이 집은 1933년에 건축이 되었는데, 동북향으로 지어져 뒤쪽으로 해가 떠 있다.
벽산 스님께서 집터를 잡아주고 한용운 선생의 지인들이 돈을 모아 심우장을 지을 때,
모두 남향으로 터를 잡으라고 했지만 조선 총독부 청사 쪽을 바라보기 싫다며 동북쪽으로 집을 지었기 때문이다.
‘심우장’ 이라고 쓰인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소박한 단층집이 눈에 들어오고, 마당 한쪽에는 만해 선생이 심은 향나무와 수령 90년이 넘는 소나무가 서 있다.
마당에는 ‘심우장’ 이름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다.
‘소를 찾는 집’이라는 뜻으로 선종의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한 열 가지 수행 단계 중 하나인 ‘자기의 본성인 소를 찾는다는 ‘심우’에서 유래한 것이다.
왼쪽에 걸린 현판은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서예가 오세창 선생이 쓴 것이다.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장방형 평면에 팔작지붕을 올린 민도리 소로수장집으로 왼쪽부터 사랑방과 안방 그리고 부엌이 자리 잡고 있다.
뒤쪽으로 돌아가면 높은 곳에 장독대가 있다.
일제에 저항하던 만해는 이곳에서 11년을 살았는데, 끝내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1944년 이곳에서 생을 마쳤다.
사랑방에는 만해 한용운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만해는 1892년 어린 나이인 14세에 결혼을 하고 1896년 홀연히 집을 나서 설악산 오세암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시베리아를 여행하고 귀국해서는 1905년 설악산 백담사로 들어가 불교에 귀의하고, 독립운동을 하다 이 집에서 생을 마쳤는데,
만해가 세상을 떠나고 난 후 외동딸 한영숙 씨가 이곳에서 살다가 일본 대사관저가 이곳 건너편에 자리잡자, 명륜동으로 이사를 가고 심우장은 만해의 사상연구소로 사용하였다.
만해가 기거하던 방에는 그의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만해와 관련된 시집이나 신문, 연구논문 집, 옥중공판기록 등이 쇼 케이스 안에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만해가 심우장에서 심혈을 기울인 것은 독립정신과 민족의식 고취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이곳에서 1934년 첫 장편소설 《흑풍》을 비롯해 《후회》, 《박명》 등을 썼고 수많은 논설과 수필 번역문을 집필했다.
또한 필명으로 ‘목부’와 ‘실우’를 사용하였는데 목부는 ‘소를 키운다’는 뜻이고, 실우는 ‘소를 잃어버렸다’는 뜻이다.
이것은 곧 자기의 본성인 ‘소’를 찾는 구도 과정과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사랑방과 안방, 소박한 모습의 부엌 앞쪽에는 툇마루가 있는데, 이곳은 심우장을 찾은 방문객들이 쉬는 자리로 사용되고 있으며 이곳에 앉아 있으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엄혹한 시대 가장 부드러운 시어를 통해 삶의 근본을 탐색하며 공부를 멈추지 않았던 만해의 마음을 헤아리다 보면 그에 대한 존경심이 우러나기 때문이다.
심우장 뒤쪽으로 산책 공원인 비둘기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만해가 남긴 말들이 기둥 곳곳에 걸려 있으며 좁은 골목 계단을 내려오면 만해의 동상과 함께 그가 남긴 대표적인 시 <님의 침묵>을 비문으로 세워놓았다.
흐트러지지 않은 자세로 앉아 꼿꼿하게 앉아 침묵하고 있는 동상을 보고 있으면,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마치 무언의 말을 건네는 듯한 표정이다.
서울 성북동에 자리 잡고 있는 소박하지만 정갈한 한옥 심우장은 만해 한용운이 일제에 저항했던 독립정신을 되새겨보고 그가 남긴 유품들을 살펴볼 수 있는 역사공간이다.
끝내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지만, 오래된 골목길 끝에 숨겨진 심우장에서
잠시나마 조용히 여유를 가지고 독립을 바랬던 한용운 선생의 마음을 헤아려 보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심우장은 대중교통으로 버스 이용 시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정류장에서 간선143번 버스를 타고 방송통신대.이화장 정류장에서
다시 마을버스 종로08로 환승해 명륜3가종점 정류장에서 하차하면 도보 5분 거리이다.
주차는 별도의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지 않고, 좁은 골목길이다 보니 큰 길가에 차를 주차하고 걸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