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지명 | 대포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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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경남 산청군 생초면 명지대포로236번길 91 |
전화번호 | 055-970-6413 |
입장료 | 무료 |
[대포서원] 고려 말의 충신, 농은 민안부의 충절을 기리다
대포서원은 산청군 생초면 대포리에 있는 조선시대 서원이다.
경호강변을 끼고 완만한 구릉에 들어선 50여채 안팎의 정갈하고 단아한 자연마을로 알려진 대포마을에 자리한 이 서원은
고려 말 두문동 72현 중 한 사람인 농은 민안부의 절의를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으로 민안부는 일찍이 등과하여 대소의 관직을 거쳐 고려 공양왕 때 예의판서를 지낸 인물이다.
1392년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자 선생을 비롯한 72현은 이에 반대하여 두문동에 운둔하였으며,
후에 대포리에 내려와 살면서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강고산 망경대에 올라 송경을 바라보며 고려조를 추모하였다고 한다.
대포서원은 1693년(숙종 19) 지역 유림과 후손들이 세운 서원이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874년(고종 11) 유림과 후손들에 의해 숭절사, 숭의재, 동재, 서재 등이 복원되었으며 수차례의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포서원은 1993년 12월 27일 경남문화재자료 제198호로 지정되었으며,
대포마을에는 대포서원과 함께 크고 작은 고옥 십여 채를 만날 수 있어 자연 속에서 옛 한옥의 정취를 느끼며 조용히 산책의 시간을 즐길 수 있다.
농은 민안부는 고려 공양왕(재위 1389~1392) 때 예의판서를 지냈으나, 조선 개국 이후 72현과 함께 만수산 두문동으로 들어가 고려에 대한 지조를 지켰다.
이후 대포리로 내려와 은둔하며 살았으며, 고려에 대한 충절과 신의를 지킨 민안부를 기리기 위해 지역 유림들에 의해 서원이 설립되었다.
여흥 민씨 집성촌인 대포리 유림에서는 매년 봄, 가을에 향사를 올리고 있다.
대포서원에 배향된 인물인 농은 민안부는 조선이 개국한 이후 여러 차례 벼슬을 주면서 불렀으나,
이에 응하지 않았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송경을 바라보며 고려의 망국을 추모하였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자손들을 경계하여 조선조에 벼슬하지 말도록 하였고, 현감에 기용된 아들을 사직하게 하였을 만큼 고려에 충심을 다했던 인물이다.
한적하고 고요한 대포서원은 맑은 공기를 마시며 호젓하게 산책을 즐기며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곳으로 제격이다.
시골마을이 주는 포근한 풍경과 한옥이 잘 어우러져 있는 이곳은 혼자 사색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으로도 좋고,
사랑하는 연인과 데이트 장소로도 안성맞춤이며, 아이들 역사교육현장으로도 손색이 없다.
조선 영조 때 농은 민안부를 비롯한 72현의 충신들을 모신 대포서원을 부조현에 봉하고 치제하는 은전을 내렸다고 한다.
영조 때는 산청 영남 유림들에 의하여 숭절사에 제향하게 되었고 정조 때는 표절사에 제향되었는데,
흥선대원군 때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된 이후 고종 11년에 유림 후손들에 의해 숭절사, 숭의재, 동재, 서재 등이 다시 중건되었다.
대포서원 내에는 ‘고려예의판서농은민선생신도비’의 모습도 볼 수 있다.
고려 말 예의판서를 지낸 농은 민인부가 두문동에 들어가 은둔한 행적을 기록한 신도비로, 비문은 기우만이 지었고 글씨는 홍문관 교리 정연시가 썼다.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마을인 산청군 생초면 대포마을에 자리한 대포서원은 고려 충신 민안부의 충절을 되새기며 호젓하게 사색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으로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대포서원은 대중교통 이용 시 산청시외버스터미널 정류장에서 농어촌 산청시외버스터미널-생초(대포)방면 버스 승차 후 대포 정류장에 하차하면 된다.
주차는 대포서원 앞에 있는 공터를 이용하면 된다.